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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령 독립유공자 육동백 선배님 소천

2007-07-24l 조회수 9492

국내 최고령 독립유공자이신 육동백옹께서 최근 100세의 일기로 타계하셨습니다. 작년 서울대학교 농업생명과학대학 [농학교육 100년 기념행사]를 참석하기 위해 미국에서 오실 정도로 왕성한 활동을 하셨던 육동백옹께선 최근, 미국 버지니아공대에서 있었던 한국 학생의 총격사건을 가슴아파하시다 버지니아대학교 총장께 한국인으로서 위로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직접 장거리 운전을 하시다 뜻밖의 교통사고를 당해 한 달여 동안의 투병생활을 하시다 올 6월 11일 소천하셨다고 합니다.

육동백 선생님은 1908년 7월20일(음력) 충북 옥천에서 4남4녀 중 장남으로 출생하셨으며, 1926년 수원고등농림학교 임학과 입학하여 1928년 학생독립운동의 효시가 된 "수원고농학생사건"의 주동자로 18개월간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셨고, 이후 수석으로 수원고농을 졸업하였으나 당시 가장 오지였던 경남 함안의 사방사업소로 가서 일본인에게 계속 핍박을 받으셨습니다. 해방 후에는 미국에 주미대사관의 농무관으로 파견되어 일하셨고, 뉴욕주립대학교와 미네소타대학교에서 강의(담당 과목은 당시 가장 첨단기술이었던 "사방공학")도 하셨으며, 후에 농기계회사에서 일하시고, 1981년 한국정부로부터 독립유공자로 표창을 받으셨으며, 슬하에 3남4녀를 두셨습니다.

당시 87세까지 두 개 직장에서 full time(월~금 은행, 토~일 양묘장)으로 일할 만큼 건강하고 부지런하셨고, 이에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으로부터‘전미 노령 근로자상’을 받으셨습니다.

돌아가신 순간까지 한국인으로서의 긍지를 잊지 않고, 버지니아대학교의 총장을 직접 만나서 위로의 말씀을 전하려 하실 만큼 한국인에 대한 끝없는 사랑을 보여주셨던 육동백 선생님의 조국애와 동포애에 다시 한번 머리를 숙이게 됩니다.

이제 육동백 선생님을 잃은 슬픔이 크지만, 그 분이 남기신 고귀한 뜻을 우리는 잊지 못할 것입니다.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고 지금과 같이 발전하고 있는 것은 육동백 선생님과 같은 애국지사가 계셨기 때문이라 생각됩니다.

다시한번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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