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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구] 농업자원경제학 전공 안병일 신임교수 인터뷰
“농업경제학은 공공재를 만드는 학문… 연구의 보람은 남들이 보지 못한 그림을 밝혀내는 데 있습니다”
서울대학교 농경제사회학부 농업자원경제학 전공에 올해 1학기 안병일 교수가 새로 부임하였다. 이번 인터뷰를 통해 안병일 교수의 연구 철학과 교육에 대한 소신, 그리고 학생들을 향한 따뜻한 조언을 들어볼 수 있었다.
1. 자기소개
“1996년에 농경제학과를 졸업하고 1998년에 석사를 마쳤습니다. 이후 박사 과정 1년을 다니다가 IMF 외환위기 시기와 겹치면서 예정되었던 발령이 취소되었습니다. 결국 농촌경제연구원에 발령을 받아 3년간 근무했고, 2002년에 유학을 떠나 2007년에 귀국했습니다. 첫 교직은 경상대학교 농업경제학과였고, 이후 고려대학교에서 근무하다가 올해 다시 모교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학부와 대학원 시절을 보낸 곳이라 감회가 새롭습니다.”
2. 전공을 선택하게 된 계기
“학부 시절에는 진로를 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저뿐 아니라 대부분의 학생들이 그렇듯, 나의 길이 무엇일까를 끊임없이 생각했지요. 그런데 어느 날 고향 원주로 가는 길에 시외버스를 타고 가다 창밖으로 논밭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나라가 망하지 않는 한 누군가는 이 땅에서 농사를 지을 것이고, 따라서 농업경제학은 반드시 필요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주 단순한 깨달음이었지만 제 진로를 정하는 데 결정적인 순간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농업경제학이라는 학문에 조금 더 무게를 두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이후 3학년이 되어 본격적으로 무역 과목을 접하면서 흥미를 느끼게 되었고, 산업조직론과 결합해 연구를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3. 연구 철학
“제가 늘 강조하는 것은 연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문제를 정의하는 과정이라는 점입니다. 많은 경우 연구자들은 선행연구를 먼저 살펴보며 ‘이 사람은 이렇게 했구나, 저 사람은 저렇게 했구나’ 하면서 그 방법을 따라갑니다. 그러나 저는 먼저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떤 접근이 필요할 것인가’를 제 나름대로 정리합니다. 제 머릿속에 설계도가 그려지면 연구는 이미 30%는 끝난 셈입니다.
이 방식은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지만, 그만큼 연구가 재미있습니다. 머릿속에 구조를 세우고 나서 데이터를 모으고 분석하는 것은 그 이후의 과정일 뿐이지요. 결국 경제학자의 역할은 남들이 보지 못하는 구조를 밝혀내어 보여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잘못된 그림을 제시하면 정부가 잘못된 정책을 내리게 되고, 이는 국민 세금 수천억 원이 허공으로 날아가게 됩니다. 그렇기에 경제학자는 공공재를 만들어내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늘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연구합니다.”
4. 최근 연구
“최근에는 농산물 도매가격과 소매가격 간의 전이 구조를 분석하는 연구를 진행했습니다. 많은 분들은 도매가격이 움직이면 소매가격이 일정한 시차를 두고 따라간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품목마다 전혀 다른 양상이 나타납니다. 기존에는 상관계수를 활용해 시차를 추정했는데, 그 방식은 한계가 있었습니다. 저는 가격의 분포를 직접 비교하는 알고리즘을 만들었습니다.
그 결과, 마늘, 배추, 쇠고기 등 품목마다 가격 전이 속도가 달랐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저장성이 좋은 품목일수록 가격 전이가 빠르고, 상하기 쉬운 품목일수록 오히려 시차가 길게 나타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직 그 이유를 경제학적으로 설명하는 작업은 진행 중이지만, 충분히 의미 있는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또 하나 주목한 것은 가격 비대칭성입니다. 도매가격이 오르면 소매가격도 곧바로 오르지만, 도매가격이 떨어진다고 해서 소매가격이 쉽게 내려가지는 않습니다. 소매시장의 구조상, 대형 유통업체가 가격을 쉽게 내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현상을 설명하려면 이론적 토대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저는 이번 연구가 농식품 물가 정책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
5. 교육 철학
“경제학은 교과서 속 학문이 아닙니다. 현실을 해석하고 분석하는 도구입니다. 제가 수업에서 강조하는 것은 학생들이 이론을 실제 생활에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제가 강의하는 ‘농산물 유통론’에서는 단순히 도매시장 구조만 다루지 않습니다. 실제 기업들이 가격을 책정하고, 광고 전략을 세우고, 물량을 조절하는 과정을 경제학적으로 재해석합니다. 마케팅 기법을 경제학적 시각으로 분석하면서, 학생들이 이론을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경험을 하도록 합니다. 학생들이 ‘아, 이게 이렇게 연결되는구나’ 하고 깨닫는 순간, 경제학의 재미를 느끼게 됩니다.
저는 교과서 지식을 전달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론이 현실의 안개를 걷어내고 구조를 드러내는 경험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것이 교육자로서 제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입니다.”
6. 농업경제학의사회적 의미
“경제학자는 현실을 진단하고 처방하는 의사와 같습니다. 농업경제학은 그중에서도 특히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농업은 GDP 비중으로만 보면 작지만, 국가의 기반 산업이기 때문입니다. 정부가 작은 판단을 잘못하면 곧바로 식량 기반이 흔들릴 수 있습니다.
농업경제학은 여전히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한 블루오션입니다. 반도체나 자동차 산업처럼 이미 잘 돌아가는 산업은 경제학자가 개입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러나 농업과 같은 1차 산업은 정책적 판단이 조금만 잘못되어도 큰 피해가 발생합니다. 그렇기에 농업경제학자의 역할은 결코 작지 않습니다.
또한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택할 때 오히려 빨리 인정받고 성장할 수 있습니다. 저는 우리 학생들이 자신이 가진 장점을 살려 이 분야의 전문가가 된다면, 사회적으로도 큰 기여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7. 학생들에게 전하신 말씀
“진로 문제는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일수록 한 발 떨어져서 바라봐야 합니다. 끝없이 고민한다고 답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양치질하다가, 혹은 길을 가다 문득 떠오르는 직관이 진짜 답일 때가 많습니다. 저도 농촌의 풍경을 보면서 연구자의 길을 정했습니다.
대학원 진학을 고민하는 학생들에게는 ‘재미’를 기준으로 삼으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연구가 재미있다면 성적이나 능력은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재미있어서 계속 파고드는 학생은 반드시 성과를 냅니다. 반대로 계산과 비교만 하다 보면 끝내 한 우물을 깊게 팔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결정일수록 단순해야 합니다. 연구가 재미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합니다.”
8. 모교로 돌아오신 소감
“서울대학교에서 첫 학기를 보내며 매일 산을 바라보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합니다. 무엇보다 서울대 학생들은 앞으로 사회 각 분야에서 리더가 될 인재들이기 때문에, 제가 전하는 지식과 가치관이 학생들의 생각과 선택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책임감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처음 교직을 시작했을 때는 학생들이 취업을 잘하도록 돕는 것이 제 역할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 이상을 요구받고 있다고 느낍니다.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리더로서 올바른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저의 책임입니다. 모교 선배로서, 또 교수로서 올바른 본보기가 되어야 한다는 마음가짐으로 강단에 서고 있습니다.”
맺으며
이번 대화를 통해 안병일 교수의 연구 철학과 교육 철학을 직접 들을 수 있다. 안병일 교수님는 “이론적 토대 위에서 현실을 분석하고, 학생들에게 학문의 즐거움을 알려주겠다”는 점을 거듭 강조하였다. 또한 “재미와 직관을 믿고 용기 있게 길을 선택하라”는 조언을 통해 학생들에게 따뜻한 격려를 전하였다.
농업경제학을 통해 사회에 기여하고자 하는 안병일 교수의 비전은 단순한 학문적 성취를 넘어 국가 식량안보와 지속가능한 발전이라는 더 큰 목표와 맞닿아 있었다. 앞으로 안병일 교수와 많은 연구자들의 노력이 농업과 사회 전반에 든든한 밑거름이 되기를 기대한다.


